안녕하세요. 경희사슴한의원입니다.
얼마 전에는 입동이었습니다. 이제 겨울이 되었다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네요.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때에는 오싹한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진료실 노트 두 번째 이야기는 환자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머리에 띠를 두른 것처럼 조이고, 뒷목까지 뻐근해요.
진통제를 먹으면 잠깐 괜찮다가 또 그래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저 역시 1년에 서너 번은 머리가 지끈거려 고생하는 편이거든요.
사실 2년 전 '긴장형 두통' 글에서 저는 "목과 어깨 근육이 뭉쳐서 신경을 누르기 때문"이라고 꽤 단순하게 정리했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조금 더 나누어 말씀드리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제두통학회의 분류(ICHD-3)를 보면 긴장형 두통(Tension-type headache)은 평생 유병률이 연구에 따라 30~78%에 이릅니다. 열 명 가운데 셋에서 많게는 여덟 명 가까이 살면서 한 번쯤 겪는다는 뜻이죠.
그만큼 흔한데도, 정확히 어떤 과정으로 생기는지는 아직 연구가 이어지는 중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만 가끔 찾아오는 경우에는 머리와 목 주변 조직 쪽 요인이, 한 달에 보름 넘게 이어지는 만성의 경우에는 통증을 받아들이는 뇌와 척수 쪽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원인은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정하기보다, 이런 두통으로 오신 분을 제가 진료실에서 어떤 순서로 보는지 차례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하나. 먼저 여쭤봅니다
머리를 직접 만지고 확인하기 전에 몇 가지를 먼저 여쭤봅니다.
언제부터, 얼마나 자주 아프신지
조이는 느낌인지, 맥박이 뛰듯 욱신거리는지
아플 때도 하던 일을 이어 가실 수 있는지
속이 메스꺼우신지, 빛, 소리가 유난히 거슬리는지
진통제는 한 달에 며칠 드시는지
긴장형 두통은 보통 머리 양쪽을 누르거나 조이는 느낌이고, 그런 날에도 하던 일을 이어 갈 수 있을 정도로 통증이 완만한 편입니다. 걷거나 계단을 오른다고 더 심해지는 일도 적은 편입니다. 속이 메스꺼운 일은 드물고, 빛이나 소리에 예민해지더라도 둘 중 하나 정도로 가볍게 지나갑니다.
반대로 한쪽 머리가 맥박처럼 욱신거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누워서 쉬어야 할 만큼 힘드시다면 편두통(Migraine)을 먼저 떠올립니다.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계신 분도 꽤 많아서, 그날그날의 느낌을 적어 두시면 구분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진통제 이야기도 꼭 여쭤봅니다. 흔히 드시는 단순 진통제를 한 달에 보름 이상, 석 달 넘게 드셨다면 약 때문에 두통이 이어지는 약물과용두통(Medication-overuse headache)도 함께 살펴봐야 하거든요. 약을 드신 날짜만 알아도 진료에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경우라면 한의원보다 병원에서 먼저 진료를 받아보세요. 이건 꼭 기억해 주세요.
5분 안에 머리가 터질 듯 가장 심하게 아파졌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거나, 정신이 흐려졌거나
열과 함께 통증이 점점 심해지거나
머리를 부딪친 뒤부터 통증이 시작됐거나
기침하거나 힘을 줄 때, 운동할 때마다 두통이 생기거나
씹을 때 턱이 아프면서 앞이 흐리거나 겹쳐 보이거나
평소의 두통과 양상이 뚜렷하게 다르다면
둘. 불편한 곳을 손으로 짚어 보시게 합니다
다음에는 "제일 불편한 곳을 손으로 한번 짚어 보시겠어요?" 하고 부탁드립니다. 말로 설명하실 때보다 손이 가는 곳을 볼 때 알 수 있는 게 훨씬 많거든요.
이때 짚으시는 것은 사람마다 제각각입니다. 이마부터 머리 둘레를 손바닥으로 감싸시는 분, 관자놀이를 꾹 누르시는 분, 뒤통수 아래를 주무르시는 분, 귀 뒤를 짚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뒤통수를 짚으시면 가운데에서 귀 쪽으로 이어지는 선의 어디쯤인지 한 번 더 여쭤봅니다. 뒤통수 피부의 감각은 목에서 올라오는 신경 세 갈래가 나누어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후두신경(Greater occipital nerve) : 뒤통수 가운데에서 정수리 쪽까지
소후두신경(Lesser occipital nerve) : 귀 뒤와 옆머리 쪽
제3후두신경(Third occipital nerve) : 목덜미 위와 뒤통수 아래쪽 가운데
관자놀이를 짚으시는 분께는 턱 이야기를 꼭 여쭙습니다. 관자놀이에는 턱을 다무는 근육인 측두근(Temporalis)이 부채처럼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를 꽉 무는 버릇이 있으시면 이 근육이 굳으면서 옆머리 두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셋. 눌러 보고, 꼬집어 보고, 긁어 봅니다
이제 직접 만져 봅니다.
국제두통학회 분류에서는 머리 둘레 근육을 눌렀을 때 아픈 것, 곧 압통(壓痛)을 긴장형 두통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이상 소견으로 꼽습니다. 머리가 괜찮은 날에도 남아 있고, 통증이 있는 날에는 더 심해지며, 빈도가 잦고 정도가 셀수록 압통도 커진다고 합니다.
함께 살펴보라고 적어 둔 근육은 이마의 전두근, 관자놀이의 측두근, 턱의 교근과 익상근, 옆목의 흉쇄유돌근, 뒷목의 판상근과 승모근입니다.
뒤통수 쪽이 불편하신 분이라면 저는 대략 이런 순서로 봅니다.
누르기 : 뒤통수 뼈[후두골] 아래 경계를 따라 가운데에서 귀 쪽으로 눌러 가며 압통이 있는 곳을 찾습니다.
꼬집기(Pinch roll test) : 그곳에서 위로 타고 올라가며 뒷목 피부를 살짝 집어 굴려 봅니다.
긁기(Scratch test) : 두피를 손끝으로 가볍게 긁어 봅니다.
누르는 것은 주로 근육을 보는 과정이고, 꼬집거나 긁는 것은 피부 쪽 신경이 예민해졌는지를 보는 과정입니다.
국제두통학회 분류에서도 두피나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불쾌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 신경이 지나는 곳에 압통이 있는 것을 후두신경통(Occipital neuralgia)에서 확인하는 항목으로 적어 두었습니다. 후두신경통은 몇 초에서 몇 분씩 찌르듯, 전기가 오듯 지나가는 통증이 특징이라 조이듯 오래 이어지는 긴장형 두통과는 모양이 다릅니다.
(이 부분은 연구로 정리된 내용이라기보다 제가 진료하면서 쌓아 온 생각입니다.)
대후두신경은 뒷목 깊은 곳에서 올라오다가 두반극근(Semispinalis capitis)을 뚫고, 승모근이 뒤통수에 붙는 힘줄막 근처를 지나 피부로 나옵니다. 해부 연구를 보면 승모근을 뚫고 나오는 곳이 뒤통수 가운데 볼록한 뼈[외후두융기]에서 바깥으로 2cm, 아래로 1.5cm 남짓이라고 합니다. 손가락을 대 보면 생각보다 가깝죠?
그래서 뒷목 근육이 오래 굳어 있는 분들은 이 신경이 빠져나오는 길목도 함께 예민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뒷목이 뭉친 분들 중 누르는 것에 더해 꼬집고 긁는 것에 유난히 아파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렇게 봤을 때, 긴장형 두통이 모두 신경 때문에 나타난다고 하기보다는, 이렇게 근육과 신경 문제가 겹친 분들이 꽤 계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맞겠습니다.
넷. 찾은 자리로 치료 방향을 정합니다
치료는 앞에서 찾은 자리를 기준으로 정합니다.
뒤통수 아래 압통이 뚜렷하고 꼬집기에 예민하시면, 그 신경이 빠져나오는 길을 따라 침을 놓습니다. 흉쇄유돌근과 승모근 사이, 뒤통수 아래 오목한 곳에 있는 풍지혈(風池穴)이 자주 기준이 됩니다. 대후두신경 쪽이면 승모근, 소후두신경 쪽이면 흉쇄유돌근과 판상근을 함께 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관자놀이 쪽이 중심이라면 측두근과 함께 턱의 교근이나 익상근도 살펴서 침 자리를 고릅니다. 귀 앞의 하관혈(下關穴), 아래턱의 협거혈(頰車穴)이 기준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뒷목과 등이 뻣뻣하게 굳는 모습을 항배강(項背强)이라고 부르며, 특히 찬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 때 예부터 갈근탕(葛根湯)을 써 왔습니다. 근육으로 혈액 순환이 잘 안 되고 긴장도가 높아진 일반적인 근육긴장에는 작약감초탕(芍藥甘草湯)을 사용합니다.
(참고로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 진료지침에서는 한 달에 보름 넘게 아픈 만성 긴장형 두통의 예방 치료로, 5~8주 동안 10회까지의 침 치료 과정을 고려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다섯. 진료를 마치면서 부탁드리는 것
진료를 마치고 귀가하실 때에 저는 두통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피하고 근육과 신경을 풀어줄 수 있는 좋은 것은 많이 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등이 굽고 목이 앞으로 나오는 거북목 자세 피하기
목이 뻐근할 때는 높이가 적당한 베개를 베기
몸을 따뜻하게 덥히는 찜질, 가벼운 목욕이나 사우나
가벼운 운동이나 요가와 같은 스트레칭
이와는 별개로 영국 진료지침에서는 아래와 같은 기록을 8주 이상 남겨 보기를 권합니다. 진료할 때 이런 기록이 있으면 참 좋겠네요. 병이 얼마나 심한지, 예후가 어떤지 파악하기에 좋습니다.
불편했던 날짜와 시간, 얼마나 이어졌는지
자리와 느낌, 세기(0~10)
그날 드신 약과 횟수
잠, 커피, 오래 앉아 있었던 시간 같은 그날의 생활
정리하면, 머리가 조이고 아프다고 하실 때 저는 이렇게 봅니다.
먼저 여쭤보고 서둘러 병원에 가셔야 할 신호부터 확인합니다.
손이 가는 곳을 보고 그곳을 맡는 근육과 신경을 떠올립니다.
누르고, 꼬집고, 긁어서 찾은 자리를 기준으로 치료 방향을 정합니다.
같은 긴장형 두통이라도 불편한 곳과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 머리가 왜 아픈지는 직접 진찰을 받으면서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저희 경희사슴한의원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밤 9시까지 야간진료를 하고 있습니다(오후 8시 접수 마감). 그 밖의 진료시간과 휴일은 네이버 지도 안내를 봐주세요.
다음 진료실 노트에서도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질문 하나를 골라 찾아오겠습니다.
더 좋은 진료를 위해 항상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